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토 폰 비스마르크 (문단 편집) === 일화 === 여하튼 사생활 및 사고 방식이 꽤나 독특했던 듯하며, 여러 가지 일화나 명언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독일 제일의 저술가'''라는 말도 있을 정도다. 다만 [[19세기]] '''독일 산문의 대가'''라는 평가를 받는 [[대 몰트케]]와 비교한다면 밀리기는 한다. * 젊은 시절 친구와 늪지대를 통과하다가 친구가 늪에 빠졌는데 총대를 내밀었지만 닿지 않자 총을 장전해서 친구에게 겨누고 "자네를 구하진 못하겠고 차마 천천히 죽는걸 볼 수도 없으니 고통없이 죽여주겠네."라고 말해서 친구가 화들짝 놀라 스스로 있는 힘을 다해 알아서 나오게 한 일화가 유명하다. 이에 대해서는 "평소에 너 정말 꼴 보기 싫었지만 내색은 못 하고 있었는데 이 참에 여기서 죽어라!"라며 도발했다는 판본도 있다. 친구는 기겁해서 온 힘을 다해 팔다리를 휘저었고 그 덕분에 비스마르크가 서 있는 가장자리에 가까워졌다. 그러자 비스마르크는 비로소 친구를 당겨 꺼내주었는데, 친구가 빠져나오자마자 욕지거리를 하면서 덤빌 기세이자 비스마르크는 친구에게 사죄하면서 말하길, '''"날 용서하게. 내가 겨눈건 살려고 발버둥치지 않고 포기하려고 했던 자네의 마음이네. 만약 내가 무작정 늪에 뛰어들기라도 했으면 자네를 구하기는커녕 나까지 함께 빠져 죽었겠지 않은가?"'''라고 하자 친구가 그제서야 받아들였다는 이야기. 워낙 황당한 일화라 "한국 등에서 훈육용으로 지어낸 거짓말[* 일례로 사자는 자기 새끼를 절벽에서 떨어뜨린다거나 하는 등의 [[똥군기|엄격한 교육을 미화]]하는 예문들.]이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 그 말을 친구가 받아들였다는 점도 친구조차 일반적이지 않고 상당히 대인배인 것으로 보이게 만들기에 더더욱.] 하지만 이 일화는 [[https://news.google.com/newspapers?nid=1302&dat=18820415&id=0P1UAAAAIBAJ&sjid=NZMDAAAAIBAJ&pg=2102,2930317&hl=ko|비스마르크 생전인 1882년에 나온 신문기사]]에도 이미 언급된 적이 있는 유서 깊은 이야기다. 물론 [[세설신어]]에 [[조조]]와 [[원소(삼국지)|원소]] 버전으로 동일한 이야기가 실린 것을 생각해보면 동서고금으로 널리 퍼져있던 교훈적인 민담 내용이 비스마르크의 일화로 각색된 것일 수도 있다. * 귀족 여식을 아내로 맞이할 때 장인을 상대로 치밀한 작전과 노력을 해 사기친 일화같은 [[카더라]]식 에피소드도 있다. 하지만 결혼에 이르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무신론이나 다름없던 이신론(理神論)[* 신의 존재를 인정하긴 하지만, 종교적인 의미로 신봉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규칙의 일환으로서만 인정한다.]에서 루터교로 개종한 것이고, 그나마도 '''33세 때였다. 러시아 대사 시절 47세의 나이에도 러시아 대사의 25살난 아내와 [[불륜|연애행각]]을 벌였다'''. 아내와 러시아 대사가 [[대인배]]라서 눈감아주지 않았다면, 엄청난 스캔들로 비화해서 꽤나 골치아팠을 것이다.[* 러시아 대사가 국익을 위해 참은 것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 러시아는 영국과 [[그레이트 게임]] 중이었는데, 비스마르크는 거물급 친러 외교관이므로 그가 프로이센의 외교 정책을 주도하게 된다면 친러 정책을 폈을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 [[개]]를 좋아했다. 키우던 애견이 비스마르크에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스스로 자취를 감추어버린 적이 있다. 개를 비롯해 무리생활을 하는 동물들은 이런 습성이 있다. 때문에 비스마르크는 죽기 직전까지 말썽 부리는 줄 알고 개를 야단치려고 찾고 있었던 사실을 몹시 후회한 기록도 있다. 임종시에도 그 개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고 하는데, 그 이름은 '''[[술탄]]'''. [[그레이트 데인]]이다. 개를 자기 오른편에 놓고 협상을 하기도 했다. 상대방이 흥분해서 주먹쥔 팔을 휘두르자 개가 주인님을 공격하려는 줄 알고 상대방을 공격하려든 일화도 있다. * 자주 인용되는 비스마르크의 명언으로서 "청년들에게 해줄 말은 단 세 마디뿐이다. 일하라, 더욱 일하라, 죽을 때까지 일하라."가 있다. 그러나 위에 쓰여 있듯이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정작 본인의 청년시절 생활은 성실함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 [[훈장(상훈)|훈장]]에 관련된 일화도 유명하다. >원수 시절, 전쟁에서 화려한 공을 세운 병사 한 명이 있었다. 원수인 비스마르크가 직접 훈장을 수여하는데, 이때 철혈재상이네 웃음을 모르네 하던 걸로 소문이 자자하던 비스마르크가 갑자기 씩 웃으면서 그 사병에게 농담을 했다. >"내가 자네라면 이 [[훈장(상훈)|훈장]]을 집어치우고 돈으로 100 [[마르크]]를 받길 원하겠네." >그러자 병사가 질문했다. >"도대체 이 훈장을 [[현금]]으로 치면 얼마나 되기에 그러십니까?" >그 즉시 비스마르크는 대답했다. >"이거… 현금으로 치면 고작해야 1 마르크 밖에 안 될 걸세." >그러자 그 병사도 즉각 우렁차게 말하길, '''"그럼 저는 그 훈장과 99 마르크를 받고 싶습니다!"''' >이 말에 비스마르크도 잠깐 멍해있다가 크게 껄껄 웃으면서 그의 말대로 해주었다고 한다. 단순한 유머 혹은 대담한 병사 개인에 대한 주목을 위한 이야기로 자주 받아들여지지만, 국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가치와 현실 사이의 거리감을 지적할 때 언급되어 [[국가주의]]를 비판하는데 자주 인용되는 뼈 있는 일화다. 이 이야기는 그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탈무드에서 유머로 언급한다. [[공산주의 유머]]에도 비슷한 일화가 있다.[* 사실 공산주의 유머와는 뉘앙스가 미묘하게 다른데, 그쪽에선 훈장을 주는 정치위원이 다른 선택지로 상금을 제시하고 거기에 훈장을 받는 사병이 훈장의 값을 묻자 정치위원이 화내면서 값을 말해주는 것, 마지막에 그 사병이 어떻게 되었는지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정황상 훈장이나 상금은 고사하고 징계를 받았을 확률이 높다) 등의 차이점이 있다.] * [[사랑의 학교]]에 따르면 은퇴한 후 비스마르크가 몰트케를 만나기 위해 마차를 타고가다 한 소년을 보고 태워줬다. 그 소년은 가난한 연극배우로 홀로 있는 어머니를 위해서 주머니의 돈을 드린 다음 극장으로 가려고 하자 그가 극장에 좀 늦게 가면 어떠냐고 말하자 소년이 약속을 지켜야 하지 않냐고 이야기했다. 그 소년의 모습에 감동 받은 그는 극장으로 찾아가 화환을 보내 경의를 표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 빌헬름 1세는 '''"비스마르크 아래에서 황제 노릇 하기 참 힘들다."'''는 명언을 남겼다. * [[독일 제국]]의 [[식민지]]였던 [[독일령 뉴기니]]를 방문하여 그곳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던 [[독일인]] [[수녀]]들한테 연설을 했는데 "'''자매들이여, 순종하라!'''"라고 아주 짧게만 하고 떠났다고 전해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